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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다 마음에 드는 가디건 광고를 터치했더니 쇼핑몰 사이트로 이동한다. 구매하려면 로그인을 하라면서 나에게 묻는다. “구*, 페이스*, 네이*, 카카오* 등 계정으로 로그인하시겠습니까.” ‘네’ 하는 순간, 나에 대해 이미 온갖 정보를 가진 구*, 페이스*, 네이*, 카카오* 가 이제 마음만 먹으면 올 가을 나의 추레한 패션코드까지 꿰뚫어 볼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든다. 찝찝하다. 그러나 찝찝함은 귀찮음을 못 이긴다. 아이디(중복 검사도 해야 한다), 주소, 전화번호를 일일이 넣고 어차피 읽지도 않을 사용자 약관에 체크를 할 것인가. 귀찮다. 그냥 구*, 페이스*, 네이*, 카카오* 계정으로 로그인 한다.
어디 쇼핑몰 사이트뿐이랴. 스마트폰 GPS는 설정만 돼 있으면 1년 365일 내 위치 정보를 수집한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를 얼마만큼 방문해 머물렀으며 뭘 검색했는지도 더 이상 나만의 비밀이 아니다. 온라인 상의 개인정보가 정말 개인만의 정보가 아니게 된 지도 오래.
정보통신(IT) 기업들이 모든 정보의 거래를 통제하고 세상을 지배하는 이른바 ‘플랫폼 자본주의’의 해악을 걱정해 일련의 IT 전문가들이 만들어 낸 대안이 있었으니, 바로 ‘블록체인’이다. 오로지 관리자만 접근할 수 있는 폐쇄된 서버에 각종 데이터를 보관하는 인터넷과 달리 블록체인은 거래기록(블록)이 생성되는 순간 모든 참여자가 데이터를 분할해서 보관하고 다같이 관리하는 일종의 ‘네트워크 장부’다. 특히 ‘해시 알고리즘’을 비롯한 방법을 통해서 사실상 위조나 변조가 불가능한 최고 수준의 보안을 자랑한다.
하지만 데이터 유통량의 급진적 증가를 전제로 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이 우리 사회에 남긴 첫 인상은 ‘투기 광풍’이었다. 혁신적 효용을 논하기도 전에, 2017년 하반기를 전후해 블록체인 기술을 핵심으로 하는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 가격이 폭등하면서 극심한 사회적 논란을 빚었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지금, 우리 산업 현장의 블록체인은 어디까지 왔을까. 블록체인 상용화 서비스 개발에 전력 투구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 ‘아이콘루프’의 김종협 대표를 8월 22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종협 아이콘루프 대표.
비트코인 광풍, 그 후
김 대표는 ‘비트코인 광풍’이 남긴 가장 큰 부작용을 “암호화폐 자체를 금기시 하는 분위기”라고 지목했다. 시장 혼란은 물론, 빚더미에 앉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등장했던 지난해 상황을 떠올리면 정부의 반응이 이해도 가지만, 암호화폐를 비롯한 블록체인 기술 개발에 그늘이 진 것은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는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외면할 수 없는 핵심 영역”이라면서도 “관련 제도 정비가 시급하지만 우리 정부는 비트코인 사태를 거친 후 암호화폐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실제 아이콘루프가 블록체인 서비스 개발을 위해 금융 규제 해소를 요청하자 관련 정부 기관은 끊임없이 암호화폐와 관계가 없는지를 확인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가상화폐거래소 전광판에 표시된 비트코인 가격. 연합뉴스
때문에 김 대표의 아이콘루프를 비롯한 많은 블록체인 기업들은 암호화폐 외에 블록체인 기술의 높은 보안성을 활용한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는 추세다. 일반 시민들의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사례는 아직 찾기 어렵지만 벌써 업계의 주목을 받는 블록체인 서비스도 있다. 교보생명, 우체국 등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실비 보험 청구 절차를 간소화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보통 실비보험 가입자들은 병원 진료비가 소액일 때 진단서 발급 및 보험사 제출 같은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보험료를 청구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 때 보험자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스마트폰에 발급 받은 인증서를 활용, 진단서를 비롯한 최소한의 개인정보 만을 병원에서 보험사로 바로 보내 보험료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개념이다.
아이콘루프의 대표적 사업은 금융권이 확보하고 있는 개개인의 신분증 사본과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한 신원증명 서비스 ‘마이아이디(my-ID)’다. 일반적으로 은행에 방문하지 않고 계좌를 개설하는 비대면 계좌 개설 시 이용자는 은행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신분증 사본 등 많은 개인정보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마이아이디를 이용하면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신분증 사용 권한을 본인에게만 부여한 다음, 신분증이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마이아이디 서비스는 혁신금융서비스 금융규제 샌드박스에 지정돼 개발에 필요한 제도적 여건이 마련된 상태”라며 “아이콘루프를 비롯한 시중은행, 보험사, 증권사, 전자상거래 업체 등 총 18개 사가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기업 간에도 블록체인 기반의 거래시스템을 통해 신뢰도가 낮은 거래 중개자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 요인과 비용을 줄이는 서비스 개발도 앞다퉈 진행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블록체인,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가 되지 않으려면
업계는 암호화폐 이외의 서비스 개발에 초점을 맞춰 자구책을 찾고 있지만 비트코인 광풍 이후 왜곡된 시장 분위기를 바로 잡으려면 정부의 시각 또한 달라져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김 대표는 “많은 정부 과제를 통해 블록체인 관련 산업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아직 블록체인의 확장성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껏 초고속 인터넷 망을 깔아 놓고 이메일만 이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이 예산을 투입해 블록체인 기반 업무 시스템을 도입하지만, 기존의 백신 같은 일부 보안 프로그램의 대체물 정도에서 그친다는 지적이다.
김 대표는 “지금은 블록체인 관련 기술 도입 자체가 공공기관의 업무가 선진화 되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줄 수 있다”면서도 “이용자에게 자기 정보 관리 권한을 돌려주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정보 교환을 가능케 하는 블록체인 특성을 살리지 못하면 ‘블록체인 해 봤더니 차이는 모르겠고 비용만 비싸더라’는 인식만 확대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그는 각 지방자치단체 별로 난립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지역화폐나 특산물 이력제 같은 경우 공동의 표준화 기준을 만들어 규모를 늘리기보다 전시성 사업으로만 진행되는 경향을 우려했다. 김 대표는 “최근 집안 어르신 장례식장에 갔는데 사망진단서 발급은 병원이, 장례식장은 시가 운영하는 등 업무가 분리돼 유족들이 사망신고 때문에 애를 먹었다”며 “유족이 블록체인을 통해 망자의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텐데 아직 많은 공공기관의 고민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도
김 대표를 비롯한 블록체인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국가는 다름 아닌 일본이다. 아직도 상거래 등에서 현금 거래가 압도적으로 많은 일본이 내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암호화폐 도입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일본 역시 과거 암호화폐와 관련한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있었지만 이후 대응은 우리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일본에서는 최대의 암호화폐 거래소 ‘마운트 콕스’가 해킹을 당해 파산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김 대표는 “우리는 비트코인 사태 이후 정부가 암호화폐에 대한 공식 언급을 금기시 하고 있지만 일본은 암호화폐의 안정적 활용을 위한 제도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일본의 상황을 참고해 신중한 암호화폐 정책을 만들어 가려고 하겠지만, 그 때는 이미 주도권을 빼앗긴 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아직 기술적, 제도적 난관이 많지만 암호화폐를 비롯한 블록체인 기술의 확산은 필연적인 미래”라며 “정부 당국이나 사용자 입장에서는 우려는 큰 반면 당장의 이점은 없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업계가 차근차근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따뜻한 응원과 함께 차분하게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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