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50&aid=0000053558
[비트코인 A to Z]-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선허용·후규제’ 개시…‘4년 실증’ 필요해 지나친 기대 말아야
2019년 시작된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 사업에서 다양한 ‘블록체인 관련’ 기업들이 승인을 받았다. 샌드박스 승인 기업 중에서는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이나 부동산 유동화 수익 증권 거래 플랫폼과 같이 블록체인과 토큰화 기술이 도입되기 쉬운 사업 영역이 다수 포함됐다. 또 아이콘루프·파운트·디렉셔널·카사 등은 명시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핵심 기술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이들 전통 자산이 토큰화되고 토큰화된 증권들이 퍼블릭 블록체인 위에서 유통되면 퍼블릭 블록체인의 활용 범위가 극적으로 증대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부가 적극 추진하는 ‘규제 샌드박스’
규제 샌드박스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거나 허용 여부가 모호한 혁신 사업에 대해 규모에 제한을 두고 실증 테스트를 할 수 있도록 일시적으로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 주는 제도다. 실증 테스트 기간 동안 해당 사업의 순기능이 크고 역기능이 작다고 판단되면 법령 개정을 통해 합법화하는 것 또한 규제 샌드박스의 목표다. 말하자면 선허용·후규제의 방식으로 혁신 사업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2019년 1월 17일부터 규제 샌드박스를 처음 시행하기 시작했다. 국무조정실의 총괄 아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금융위원회 등 4개 부처가 각각 정보통신기술(ICT)융합·산업융합·지역혁신·금융혁신 분야를 담당, 과제들을 심사·선발·관리하고 있다. 2020년 5월인 현재까지 200개가 넘는 과제들이 승인을 받았다. 이는 당초 사업 계획의 2배가 넘는 것이다. 이번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에 대해 어느 정도 열의를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규제 샌드박스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2020년 1월 23일 공개한 ‘규제 샌드박스 발전 방안’에 따르면 승인 과제의 약 60%가 디지털 신기술을 활용한 과제다. 여기에서 언급된 디지털 신기술에는 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인공지능(AI)과 함께 블록체인이 포함돼 있다. 즉 블록체인이 디지털 신기술의 일종으로 혁신 사업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블록체인을 명시적으로 이름에 포함한 과제는 크게 분산 신원 인증(DID) 분야, 부동산 유동화 분야, 증권(주식) 중개 분야로 나눠 볼 수 있다.
분산 신원 인증 분야에는 ‘디지털 신원 증명 플랫폼’을 구축하는 아이콘 루프, ‘분산 ID 정보 지갑 기반의 로보어드바이저’를 구축하는 파운트가 있다. 부동산 유동화 분야에는 ‘디지털 부동산 수익 증권 유통 플랫폼’을 개발하는 카사코리아가 최초로 승인을 받았다. 비슷한 사업을 추진하는 루센트블록 또한 규제 특례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권(주식) 중개 분야에는 디렉셔널과 신한금융투자가 ‘블록체인 기반의 개인 투자자 간 주식 대차 플랫폼 서비스’로 승인받았다.
블록체인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연관성이 높아 보이는 과제들도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거래소(KRX)의 자회사로 관련 기술 개발을 진행하는 코스콤은 ‘비상장 기업 주주 명부 및 거래 활성화 플랫폼’을 과제로 승인받았다. 과제 이름에는 블록체인이 명시돼 있지 않지만 코스콤에 따르면 1년 넘게 개발한 블록체인 플랫폼을 사용해 투명하고 안전한 거래가 가능하다. 업비트의 개발·운영사로 유명한 두나무와 판교거래소를 개발한 피에스엑스(PSX)가 유사 과제로 승인받았다. 이 밖에 부산시에서 ‘디지털 원장 기반의 지역 화폐 활성화 서비스 실증’을 비롯해 총 4개의 분산 원장 또는 블록체인 관련 과제를 승인받았다.
◆‘퍼블릭 블록체인’까지 활용은 시기상조
디지털 신원 인증이나 증권형 토큰 등은 암호화폐를 넘어 블록체인의 사용 사례로 각광받던 분야다. 창업자들을 만나는 것이 주요 일과인 투자자로, 그동안 블록체인과 관련돼 있다는 이유로 사업에 불편을 겪었다는 창업자들의 볼멘소리를 들어 왔다. 그동안 정부가 블록체인 기업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았던 만큼 이번 규제 샌드박스에 블록체인 관련 과제들이 대거 포함된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런 혁신 사업들이 규제 샌드박스 안에서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내면 법령 개정을 통해 규제 특례 기간 이후에도 합법적으로 사업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규제 샌드박스의 취지다. 이렇게 되면 위 특례 기업들이 사업을 지속성 있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종 사업을 진행하는 다른 회사들도 별도의 특례 없이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규제 샌드박스 실험을 통해 하나의 산업이 완전히 법제화되고 양성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 샌드박스가 퍼블릭 블록체인에 미치게 될 영향은 당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퍼블릭 블록체인상에서 이런 아이디어들을 구현하면 비가역성과 데이터 불변성·보안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스마트 콘트랙트와의 연동 과정에서 외생적인 위험 요인들이 발생할 수 있고 실험적인 사업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통제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퍼블릭 블록체인을 통해 토큰화된 증권들이 유통되면 규제 측면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기업의 사업 초기에는 퍼블릭 블록체인보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사용할 것으로 보이고 타협적으로 컨소시엄 블록체인(여러 참여 주체가 모여 운영하는 일종의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정도가 적정선일 것으로 보인다.
2019년 시작된 규제 샌드박스는 블록체인 산업의 성장 토양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이 퍼블릭 블록체인과 결합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에서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본 2년간 특례를 허용하고 필요하다면 2년의 연장 기간을 부여한다. 즉 4년 정도의 실증 테스트가 필요할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또 금융위를 비롯한 정부 부처에서 이러한 혁신 금융 서비스의 성과가 좋다고 판단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입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중앙 정부와 관계 부처, 입법 기관인 국회 그리고 업계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이 적극적으로 공조하고 결론을 이끌어 내야만 법제화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당장은 너무 큰 기대감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각 영역에서 실제 소비자들이 원하는 요구 사항과 그들이 느끼는 고통들을 적절히 해결해 내는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 속에서 블록체인이 어떤 부가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지 너무 서두르지 말고 단계별로 검증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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